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래(朴相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23847
  • 전몰일자 : 19530204

공훈사항

박상래 하사는 1925년 12월 10일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4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군단의 전투지경선 조정(1952. 6. 16)에 따라 군단의 중앙사단으로서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 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1952년 지형능선과 수도고지에 대한 제한공격이 무위로 끝난 후 전선은 8월 초까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박상래 하사가 배치된 사단은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강화에 주력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6일부터 8일까지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다. 이와 같이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기갑연대 제5중대가 배치된 지형능선과 제6중대가 배치된 575고지에 맹렬한 공격준비사격과 더불어 각각 1개 중대병력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왔다. 지형능선상의 전초소대는 오후 9시경 수명의 생존자만이 철수하면서 능선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박상래 하사와 연대병력은 6차에 걸친 역습에도 불구하고 탈환에 실패하였으나 7차에 걸친 치열한 역습으로 탈환에 성공하였다. 이후 9월 20일까지 수차에 걸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진지를 사수하였다. 이어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나, 8일 575고지를 상실한 후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12월 12일 강원도 사창리 북쪽으로 이동하여 미주리선 방어임무에 돌입하였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모범을 보이며 솔선수범하였다. 최후까지 분전하며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박상래 하사는 1953년 2월 4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ㄹ-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