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래(朴相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0480
  • 전몰일자 : 19510627

공훈사항

박상래 일병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쌍방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4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익힌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상래 일병은 임진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 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를 강화하고 있었다. 1951년 4월 22일 저녁 8시를 전후하여 중공 제64군은 일부 병력으로 임진강 북쪽에 진출한 박 일병과 연대병력의 퇴로를 차단한 후 포위공격을 기도하였으나 장병들의 투혼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어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의 도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고랑포 일대와 강상에 기계화된 포병의 탄막사격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도하준비를 완료한 중공군은 조수의 영향으로 강물의 수위가 낮아진 23일 새벽 2시 30분을 전후하여 자지포 일대에서 2개 중대 규모로 도하 공격을 개시하였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4월 28일 북한군 제8사단과 금촌, 동거리 일대에서 지연작전을 전개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울 외곽으로 철수하였으며, 29일에는 화전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박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사단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으며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 또한 계속되었다.
6월에 접어들어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게 되었으며, 전투는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박상래 일병은 1951년 6월 27일 비지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ㅍ-09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