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두(朴相斗)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14175
  • 전몰일자 : 19521002

공훈사항

박상두 상병은 경남 김해군 북림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0월 10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51년 11월 8일 해병대 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박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해병대는 월산령지구에서 방어작전(1951년 9월 5일부터)을 수행하고 있었다.
해병대 포병대대는 해병대 제1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제1연대의 배속부대로서 5월 하순경 양구지역으로 투입되어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월산령지구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하고 높은 곳으로 주변 일대를 감제할 수 있어 피·아 간 매우 중요한 고지군이었다. 924고지(김일성고지)와 1,026고지(모택동고지) 일대를 빼앗긴 적은 이를 탈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역습작전을 실시했다. 연대는 방어작전을 실시하며 적 지역에 대한 정찰과 기습작전을 실시하였다.
연대는 명에 의거 1952년 3월 17일 이 지역에 대한 방어작전을 종료하고 서부전선인 장단·사천강지구로 기동했다.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단·사천강 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연대 정면의 적은 중공군 제582연대, 제584연대였는데 4월부터 전초진지를 두고 피·아 간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계속 반복되었다.
우기인 7월과 8월은 사천강 수위의 변동이 잦아서 피·아 간 작전은 제한적으로만 실시되었다. 7·8월 장마철이 지나자 정찰활동과 기습공격, 포격전이 연일 계속되었다. 해병대가 점령하고 있던 전초진지 일대는 155고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발 50m 미만의 구릉과 전답으로 된 개활지이며, 적의 감제하에 있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이었다. 적은 해병대가 점령하고 있던 전초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수시로 공격을 시도했다.
10월 2일 연대 정면의 중공군은 아군 전초진지를 탈취하기 위해 오후 6시 30분을 기해 각종 화력을 집중하며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이때 박 상병은 대응포격을 위해 탄약수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포격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두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1묘역-5판-8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ㅇ-06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