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대(朴相大)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8874
  • 전몰일자 : 19500912

공훈사항

박상대 일병은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후퇴만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제2연대를 직접지원했다.
박상대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23일, 제6사단은 화산 북쪽의 주요 고지인 화산 탈환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전입하기 전에 제7연대는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에 낙동강 선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던 중, 8월 12일 22시경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위천 북방의 국통산∼청노동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8월 26일까지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중요지형의 쟁탈전이 연일 계속 되었지만 장병들은 공세적인 방어로 진지를 확보했다.
박상대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8월 29일 오전에 신녕에 도착하여 바로 화산 탈환을 위한 공격을 개시했다. 제7연대는 먼저 중간목표인 228고지를 점령하고, 다음날 용암산을 탈취해 이를 발판으로 최종목표인 화산(828고지)을 공격했다. 공병중대는 장애물 개척을 위해 선두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지뢰지대 및 철조망 지대를 개척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하여 총격전만 반복했다. 제7연대는 31일에 적정을 고려하여 야간공격을 했다. 그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철수하여 예상외로 손쉽게 목표를 탈취했다.
북한군은 9월 2일에 국군 방어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9월 공세를 시작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유엔군의 우세한 항공 및 포병화력의 지원을 받아 격퇴했으나, 신녕 및 영천이 일시적으로 적에게 피탈되는 위기가 닥쳤다. 연대는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돌파된 지역에 대해 강력한 역습으로 회복하였다. 박상대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원활한 통신 소통 없이 승리는 없다’는 신조로 제2연대에 적극적인 통신 지원을 했다. 그는 9월 12일 전투에서 사단과 연대 간에 통신망 유지를 위해 출동했다가 적 침투부대의 습격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7면-25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ㅁ-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