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달(朴尙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103921
  • 전몰일자 : 19501014

공훈사항

박상달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만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19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박상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8일, 제6사단은 신령 북방의 고지군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에 제6사단은 인접의 국군 제8사단이 9월 6일에 영천을 최초로 적에게 빼앗기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제19연대를 급파하여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 방향으로 제8사단과 협공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영천의 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이때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19연대 직접지원하였고, 임무 완수 후 9월 12일에 제6사단으로 복귀하여 반격을 준비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조림산을 거점으로 9월 22일까지 완강히 저항하다가 이날 야간에 퇴각했다. 제6사단은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 제8사단을 추격하여 함창-문경-충주를 탈환하고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하여 10월 8일에는 화천에 도착하였고, 10월 11일까지 제7 및 제8사단과 협력하여 김화-철원-평강을 확보했다. 사단은 10월 13일에 신고산을 점령하고, 10월 14일에 마식령을 넘어 양덕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날 공병중대는 선두에서 적이 설치한 지뢰지대를 개척하다가 적 부대로부터 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8면-2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ㅇ-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