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남(박상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103405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박상남 일병은 1925년 12월 5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박 일병은 1950년 9월 4일에 입대해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제1연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1연대 소속이었던 박 일병은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직할부대로 정리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였다.
이후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후 제9사단은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던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였고, 이에 따라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3월 12일 송계리에 투입되었다.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후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인제 남방의 598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 무렵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징후가 포착되었고, 사단은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하였다. 이후 박 일병은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남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ㅇ-00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