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길(朴相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2702605
  • 전몰일자 : 19520628

공훈사항

박상길 이등상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한 후 2차 총공세로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혼란에 빠져 있던 1950년 11월 하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상길 이등상사는 임진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이등상사가 소속된 사단은 중공군의 주공이 예상되는 고랑포 정면 임진강 남쪽의 장파리-마포리-도감포 일대에 주저항선을 구축하였다. 1950년 12월 31일 임진강 남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중공군은 후속부대를 도하시켜 연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박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사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진지 일부를 돌파당하였고 이로 인해 부대 장병들은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다.
박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오전 8시 105mm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고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1952년 2월부터 6월까지는 약간의 기습작전이 전개되었으나, 쌍방이 점령하고 있는 방어진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공산군은 진지에 박혀 있다가 주로 야간에 작전을 전개하는 반면, 국군과 유엔군은 주로 주간에 활동하였다. 박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하고 계속 정찰과 기습을 통하여 북한군과 접촉을 유지하며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하였고,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전투 초점이 될 뿐이었다.
박상길 이등상사는 일부 병력과 정찰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사격전을 전개하며 고군분투하였으나 끝내 방어하지 못하고 1952년 6월 28일 고양대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길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41083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ㄹ-05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