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기(朴相基)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201636
  • 전몰일자 : 19510425

공훈사항

박상기 하사는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現 부천시 오정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가운데 1949년 7월 21일 충청남도 대전에 있는 제2사단 제25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복무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의정부, 창동, 말죽거리, 과천, 안양 일대 전투에 투입되어 격전을 치르고, 문의-보은-청주로 축차적으로 철수하는 상황 하에 지연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연대는 전투력이 저하되어 1950년 7월 25일 해체되면서 병력들은 타부대로 전속되어 복무했다.
이에 따라 박상기 하사는 제1사단 제12연대에서 낙동강 방어선전투에 투입되어 복무하다가 제5사단이 10월 8일 재창설 되면서 제3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제5사단은 국군 및 유엔군의 북진작전으로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을 11월 22일까지 완수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엄호하기 위해 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투입되어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아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은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가평-횡성-여주-영주 일대로 철수하였으며,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사단은 다시 전방지역에 투입되어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하여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위한 대규모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 일대에 新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횡성 일대의 봉복산-태기산 전투(3월),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냈다. 이후 사단은 4월 10일에 인제 방면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초순 美 제10군단에 배속되기 전까지 부대정비와 위력수색에 주력했다. 박상기 하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4월 25일 장평 지역에서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위력수색 중 은거해 있던 적과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기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7944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8묘역-2판-1880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ㄲ-07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