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기(朴相基)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36888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박상기 하사는 1930년 5월 16일 경상북도 달성군 동촌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상기 하사가 전선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서울 함락 후 낙동강까지 철수했던 국군이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친 후 반격 및 북진작전에 돌입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세 차례의 공세로 평택-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다.
박상기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또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평창 일대에서 대관령 방향으로 조심스러운 반격작전을 계속해 설악산으로 진출하였다.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지형능선과 수도고지에 대한 제한 공격이 무위로 끝난 후 전선은 8월 초까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박상기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 공사에 주력하였다. 중공군은 5월 12일 689고지(텍사스고지)공격을 시작으로 5월 13일부터 금성돌출부 정면의 전초진지에 대해 공격을 가해 왔다. 중공군의 대규모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금성 돌출부 양견부가 돌파되었으며, 후방의 지휘소가 기습을 받는 등 혼란이 야기되어 박 하사와 장병들은 금성천 남쪽의 백암산과 주파령, 적근산 부근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6월까지 금성돌출부 서측의 번개고지, 샛별고지, 무명고지 전투를 수행한 후, 7월 13일부터 금성 지구에서 중공군을 맞아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7월 14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공격목표인 진현리-금성천-462고지로 진출하였으나 원래 진지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사기로에서도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상기 하사는 1953년 7월 16일 강원도 김화지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6판-6면-08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8-ㄹ-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