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기(朴相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0896
  • 전몰일자 : 19500912

공훈사항

박상기 일병은 1929년 5월 29일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8월 29일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대구방위사령부 경비대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되고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대구로 이동함에 따라 임시수도인 대구 방위가 급선무가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24일 제2사단을 해체하면서 육본 직할로 대구방위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 사령부는 기구만 설치되었지, 실질적인 병력이 없었기에 대구 방어를 위해서는 각 도에서 집결한 경찰 병력, 청년방위대, 후방 병력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동 사령부는 8월 1일 대구방어 및 팔공산 지역에 대한 경비를 위해 대구 동촌비행장에서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병력은 대구 시내에서 모집한 신병들로 편성했고, 대원들은 일제 99식 소총으로 무장하여 전투 능력은 보잘것없었으나, 정신력만은 조국을 지켜내겠다는 투지로 가득 찼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9월 공세를 맞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경비대대는 적 출몰지역에 출동하여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대구 지역은 1948년 11월 대구 주둔 제6연대가 무장 폭동 사건을 일으켰고, 북한에서 파견한 유격대가 대구 인근의 산악지대에서 유격활동을 하는 등 전쟁 전부터 좌익 세력과 적 게릴라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8월 중순 전선이 왜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대구 북방에 형성되면서,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지방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 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9월 12일 대구 시내에 적 게릴라가 출몰하자 경비대대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박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 게릴라들을 추적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7면-09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2-ㄱ-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