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기(朴相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757063
  • 전몰일자 : 19530715

공훈사항

박상기 이등중사는 1929년 12월 3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2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박상기 이등중사는 수도고지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2년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장병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후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박상기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953년 5월 14일~16일까지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일~24일 금성 서남쪽 4㎞ 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7월 하조리에서 회고개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휴전이 임박했던 1953년 7월, 금성지역 북방의 중공군은 6·25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중부 전선에 돌출되어있는 한국군 전선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4개 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였다.
박 이등중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상기 이등중사는 1953년 7월 15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7판-2면-22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7-ㅅ-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