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기(朴相基)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14114
  • 전몰일자 : 19520731

공훈사항

박상기 상병은 경남 남해군 남해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0월 10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과정을 마친 후 1951년 11월 8일 해병대 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박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해병대는 월산령지구에서 방어작전(1951년 9월 5일부터)을 수행하고 있었다.
해병대 포병대대는 해병대 제1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제1연대의 배속부대로서 5월 하순경 양구지역으로 투입되어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월산령지구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하고 높은 곳으로 주변 일대를 감제할 수 있어 피·아 간 매우 중요한 고지군이었다. 924고지(김일성고지)·1,026고지(모택동고지) 일대를 빼앗긴 적은 이를 탈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역습작전을 실시했다. 연대는 방어작전을 실시하며 적 지역에 대한 정찰과 기습작전을 실시하였다.
연대는 명에 의거 1952년 3월 17일 이 지역에 대한 방어작전을 종료하고 서부전선인 장단·사천강지구로 기동했다.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단·사천강 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연대 정면의 적은 중공군 제582연대, 제584연대였는데 4월부터 전초진지를 두고 피·아 간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계속 반복되었다.
우기인 7월이 되자 사천강 수위의 변동이 잦아서 피·아 간 작전은 제한적으로만 실시되었다. 그러던 중 7월 31일 적은 기상이 호전된 틈을 타서 아군 포병진지와 방어진지에 대한 대대적인 화력을 집중했다. 이때 박 상병은 대응사격을 위해 탄약수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포격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1묘역-5판-8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ㄲ-05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