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근(朴相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311
  • 전몰일자 : 19520820

공훈사항

박상근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구성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8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일병 역시 긴급한 상황에 따라 기초훈련조차도 수료하지 못하고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상근 일병은 수도고지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전선 상황은 장마로 인하여 대체로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교착된 전선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기선을 확보하고 방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정찰전과 아울러 전초의 전술적 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제한된 규모의 공세적인 전투정찰도 실시하게 되었다. 따라서 부대는 적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진지주변에 철조망·지뢰·조명장비·부비트랩 등을 설치하는 등 각종 장애물과 방호시설을 강화하였다. 정찰활동은 주로 야간에 전개되었고, 병사들은 국지경계를 강화하고 철조망을 통과하여 순찰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8월 중순 북한군이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자 연대병력은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663고지 일대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전투 현장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박 일병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신병이었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포탄이 빗발치며 낙하하는데도 미친 듯이 참호전을 전개하며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으나 끝내 막아내지 못하고 박상근 일병은 1952년 8월 20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8판-6면-19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ㅂ-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