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균(朴相均)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000685
  • 전몰일자 : 19511130

공훈사항

박상균 하사는 전라북도 남원군 대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0년 8월 하순경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천전투에서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경주 무릉산 전투에서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했고, 이때 연대는 경주-문경-충주-서울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연대는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초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에서 중공군과 일전을 치른 후 묘향산 남방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후 5월까지 연대는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속사리-하진부리-대관령 일대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월 9일 양구 북방의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를 공격하여 9월 2일 이를 확보하고, 이어 9월 15일 883고지-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18일 883고지를 확보했다. 연대는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제7사단은 9월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육본 직할로 소속이 변경되어 양구 일대에서 부대정비를 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연대는 진지를 보강하며 수색정찰, 매복 작전 등을 수행했다. 박 하사는 11월 30일 분대원을 이끌고 수색정찰 작전을 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1면-695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ㅁ-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