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균(박상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704979
  • 전몰일자 : 19500807

공훈사항

박상균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22일 육군에 입대하여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박상균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전선 정리 계획에 따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22일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었다. 화령장 일대에서 기습 준비를 갖추고 있던 사단은 적의 대열이 화망 깊숙이 들어오도록 기다린 다음 사격명령에 따라 일제히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근거리에서 사격을 받은 적의 대열은 순식간에 분산되어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쓰러졌고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적은 산과 논으로 심지어 도로변 배수관에까지 숨는 자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소탕되어 도로변과 주위 논바닥에는 적의 시체로 가득하였다. 24일까지 전장 정리를 마무리한 후 상주로 이동하였다. 이후 제1사단은 군단 재편성계획에 따라 제2군단으로 전환되어 함창으로 전진하였다.
함창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던 박 일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정리로 이동, 왜관에서 낙정리까지 도상거리로 42km 정면을 담당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다음날(2일) 제12연대의 엄호 아래 나루터에서 선박으로 낙동강을 도하 하여 3일 저녁까지 신진지의 점령을 완료하였다. 적의 도하는 8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주 접근로를 담당한 박 일병과 사단 병력은 낙정리 부근으로 도하 하는 적 제13사단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적의 도하가 본격화되자 방어 정면이 너무 넓은 데다가 북쪽이 돌출되어 있어 방어선의 유지가 어려워졌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5일부터 적 제13사단 주력의 총공격을 받기 시작하여 낙산동 일대의 고지가 일시 피탈되었으나 과감한 역습을 전개함으로써 적을 격퇴하였다.
박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용맹을 발휘했다. 최후까지 용감히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박상균 일병은 1950년 8월 7일 낙산동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1면-35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ㄷ-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