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규(朴相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301762
  • 전몰일자 : 19510625

공훈사항

박상규 이병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2월 1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상규 이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전선 상황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에도 북한군과의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박상규 이병은 1951년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이어 박 이병과 연대병력은 3월 9일 속사리 부근의 지역을 위력 수색하면서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박 이병과 장병들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북한군 제6사단 제1연대는 가리봉-대승령-노동을 연하는 선에 강력한 거점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험준한 지형과 특유의 짙은 안개로 공격이 지연되었으나 포병의 엄호하에 근접전투와 치열한 백병전을 펼쳐 힘겹게 가리봉을 점령하였다. 가리봉에서 철수한 북한군 제6사단 제1연대는 그들의 주보급로인 용대리-간성 도로를 유지하기 위하여 패잔병과 증원 병력으로 부대를 재편성한 후 대성폭포-백담사-노동을 연하는 선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양양 전투를 수행한 박상규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전투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이어 5월 29일 간성 서북쪽 504고지를 공격해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박 이병과 연대병력은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을 격퇴하고 940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던 박상규 이병은 1951년 6월 25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던 중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향로봉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규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8판-5면-0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ㅎ-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