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규(朴相圭)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5

공훈사항

박상규 경사는 1923년 2월 7일 서울시 동대문구 마장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보안과 소속으로 재직 중 수원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경기도경은 서울-수원, 수원-용인, 수원-화성 간 주요 보급로 경비와 철도경비,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며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박 경사는 북한군의 남침동향, 전투상황, 오열의 활동상을 파악하여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일 평택에 집결되어 있던 경기경찰병력이 안양과 수원에 배비되었고, 7월 4일에는 경기경찰 300명이 천안-수원 간 철도경비를 강화했다. 이 시기 전선은 수원-이천-여주-원주를 연하는 선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날 북한군이 수원을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군경부대는 수원을 사수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하여 방어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7월 5일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경기도경찰국을 사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규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50판-4면-0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ㅊ-07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