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군(朴相君)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202454
  • 전몰일자 : 19500908

공훈사항

박상군 이등상사는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1948년 4월 2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상군 이등상사는 신생 조국을 구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서 작전과 훈련에 임하였다. 당시 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박 이등상사는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초부터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박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저지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박상군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다부동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연일 반복되는 공방전에서 매일 평균 600여 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그 결과 사단은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수훈을 세웠다.
박 이등상사가 방어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수차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박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 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연대는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상군 이등상사는 1950년 9월 8일 영천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군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8판-3면-25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ㄲ-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