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국(박상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2192
  • 전몰일자 : 19521202

공훈사항

박상국 일병은 1931년에 강원도(現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면 다림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1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박상국 일병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되어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에 투입되어 포항, 진주, 김천 일대에서 적 게릴라들을 소탕했고, 이후 가평, 청평, 춘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자, 사단은 12월 13일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 탑두울-배후령을 잇는 전선 방어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며 중공군의 1951년 신정공세 및 2월 공세를 막아냈다. 그 후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은 홍천 일대 풍암리까지 조직적으로 격전과 철수를 반복하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박상국 일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8월 16일부로 美 제2사단에 배속되면서 ‘피의 능선’을 공격하여 9월 7일 목표를 탈취했다. 제36연대가 복귀한 사단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 점령을 위해 8월 31일부터 공격을 개시하여, 10월 14일까지 북한군 3개 사단과 치열한 전투 끝에 1,211고지를 적에게 내주었으나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1952년 1월 13일부로 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했다. 마침내 북한군 제9사단은 7월 10일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사단은 적에게 351고지를 탈취당했으나, 7월 13일까지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11월 초순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사단은 351고지를 사수했으며, 11월 10일부로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실시했다. 박상국 일병은 12월 2일 간성 일대에서 수색정찰 중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국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3면-1730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ㅋ-06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