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국(朴相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327079
  • 전몰일자 : 19530625

공훈사항

박상국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칠성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20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상국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0연대는 건봉산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가기 전에 제20연대는 1952년 4월 15일에 거제도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포로 경비임무를 지원했다.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는 강제징집을 이유로 북한으로의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와 찬성하는 친공 포로 간에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하여 경비병력이 추가로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제20연대 장병들은 거제에서 포로들 간의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 임무에 집중했다. 그러나 친공포로들은 계속 폭동을 일으키고, 5월 7일에는 당시 포로수용소 소장이었던 돗드 장군이 포로들에게 피랍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후 박상국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친공 포로들의 폭동을 제압하고 포로수용소에 안정을 되찾은 후인 7월 11일에 양양에 위치한 사단으로 다시 복귀하여 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했다.
한편 유엔군과 공산군은 포로교환문제로 지루한 휴전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고, 전선에서는 별다른 전투행위는 쌍방 간에 실시하지 않았다. 얼마 후 제11사단은 1953년 6월 10일에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의 산양리, 하로곡, 동지화로 이동하여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사단이 화천 일대로 이동한 것은 이 일대에 중공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진 조치였다. 이곳에서 장병들은 적의 침투를 거부하기 위해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박상국 일병이 소속된 중대는 1953년 6월 25일 새벽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4-ㄱ-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