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곤(朴相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309
  • 전몰일자 : 19500817

공훈사항

박상곤 일병은 경상북도 영천군 대창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3월 초, 강원도 원주의 제6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원주에 위치하면서 사단 일반지원 및 제19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춘천에 26일 새벽 5시에 도착했다. 그가 소속된 통신중대는 제19연대와 함께 춘천으로 이동했다. 제19연대는 춘천 도착과 동시에 제7연대를 증원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6월 27일에는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30일 오후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박상곤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제19연대 장병들과 함께 7월 1일 야간에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7월 4일에 안성을 거쳐 진천으로 철수하였고, 7월 9일에 수안보로 이동했다. 이후 7월 12일 문경-점촌-함창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하다가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양곡동 일대의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8월 6일에 양곡동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하였으나, 적의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은 진지에서 후퇴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를 새로운 방어진지로 점령했다. 그는 8월 8일 오전 11시경에 북한군이 선돌주막 부근까지 진출하자 장병들과 함께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조동과 외곡동 선으로 철수했다.
박상곤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8월 13일 제19연대가 군위, 의흥을 경유해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할 때 통신 지원을 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8월 15일부터 전차의 지원을 받아 격렬한 공격을 계속했다. 통신 소대원들은 원활한 통신 지원 없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통신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8월 17일에 사단과 연대 간에 통신이 끊긴 상황에서 이를 복구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적 침투부대의 기습공격을 받고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4면-0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ㄱ-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