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갑(朴相甲)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810355
  • 전몰일자 : 19520812

공훈사항

박상갑 일병은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지속되던, 1952년 3월 21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상갑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유엔군과 공산군은 휴전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작전과 전선 개선, 그리고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고지쟁탈전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제5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에서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여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단의 주저항선에는 제36연대를 좌측 전방, 박상갑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를 우측 전방에 배치하고 제27연대는 예비로 강원도 간성 부근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51고지 전초진지 방어를 담당한 제35연대는 주저항선에 제2대대만을 배치하고 전초진지에 제1, 3대대를 배치하여 전초진지의 방어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소규모 수색정찰 활동을 하는 등 전선은 1952년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북한군은 7월 10일 오후 10시에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351고지 전초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사단은 다음날 제35연대 제2대대 및 제3대대가 역습을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7월 12일에는 제27연대로서 동 고지를 탈환하도록 하였으나 진전이 없었다. 다시 제35연대가 7월 13일 오후 8시에 역습을 전개하여 351고지를 탈환했다.
그 후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박상갑 일병은 8월 12일 강원도 고성 일대 351고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중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갑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6판-7면-06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ㅊ-08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