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화(朴三和)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03831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박삼화 하사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2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서울 함락 후 낙동강까지 철수했던 국군이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친 상황이었다. 이어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 및 북진작전에 돌입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세 차례의 공세로 또다시 평택-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다.
박삼화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2월 25일 중공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사단의 공격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미 제7사단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하여 박 하사와 연대병력을 신속히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다. 부대 장병들은 3월 9일 속사리 부근의 지역을 위력 수색하면서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박삼화 하사와 연대병력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양양전투를 수행한 박삼화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전투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인한 영향과 식량과 탄약의 부족 등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박 하사와 장병들의 공격은 좌절되기 일쑤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삼화 하사는 1951년 5월 18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던 중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설악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화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0349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ㅂ-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