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호(朴三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3375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박삼호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시 강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0년 6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을 받았다. 이에 강릉에 주둔해 있던 제8사단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적의 화력에 주문진을 상실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박 일병이 속한 제8사단은 1950년 8월 낙동강까지 후퇴를 하였다. 9월에는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9일 연천 남방에 도달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장은 새로운 국면에 봉착되었다.
제8사단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방의 삼동에서 38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해 율리에서 수안, 신변리를 거쳐 토산에 이르렀다. 토산에서 부대를 재정비한 제8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공세를 방어하게 되지만 계속되는 전투 끝에 사단의 좌, 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고, 결국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된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혹한의 상황에서 방어태세를 강화했으며 재정비를 완료한 후 사단지휘소를 능우리로 이동시켰다. 이후 형성 서북방 신촌을 통과하여 적 소부대의 저항을 제거하면서 풍수원 방면을 향해 진격했으며 동봉의 적 2개 중대를 격파하고 전차부대의 엄호하에 창봉리의 적 2개 중대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여 완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소수 병력으로만 저항을 시도한 적은 대병력을 투입하여 아군 전선에 대하여 대 반격공세를 취했다. 적은 일부 병력으로 하초원리 부근의 도로를 차단했는데 특히 아군 전차와 화포병의 돌파를 예상하여 도로를 폭파시킨 다음 제8사단의 정면으로 3개 사단이 포병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역습을 감행해왔다.
제8사단은 오음산 대삼 고개의 진지로부터 횡성으로 철수를 개시하려고 했으나 이미 적의 전초 중대가 횡성을 향하여 집결 중이었기 때문에 제8사단은 고립된 채 포위 상태에 들어갔다. 이에 아군은 포병 1개 대대 및 전차 5대로 철수를 위한 개척을 기도했으나 분산해 매복해 있는 적을 발견하지 못해 철수가 어려워졌다.
결국 제8사단은 아군의 증원을 기다리며 방어했지만 아군 전선에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가 제8사단 일부만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1950년 12월 1일 후방지역 경계임무 도중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호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1판-5면-1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ㄲ-00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