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현(朴三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24332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박삼현 이병은 1926년 10월 31일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자, 그는 조국통일에 앞장서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이병은 1950년 10월 22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실시 중이었고, 제7사단은 평양과 그 북방 일대의 잔적소탕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11월 1일 함경남도 개천군 군우리로 집결했고, 이 무렵 중공군은 청천강 선까지 진출했다. 사단은 11월 3일부터 7일까지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서 중공군 제38군단과 혈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사단은 11월 22일 묘향산으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중공군 제38, 42군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승호리-신계-시변리로 축차적으로 철수했다. 12월 6일 유엔군은 예성강 입구에서부터 시변리를 통과해 철원과 화천 그리고 양양을 거쳐 동해에 이르는 방어선을 설정하고 1차 지연전을 실시했다. 미 제8군은 12월 22일까지 점진적으로 전선부대를 남쪽으로 후퇴시키기로 했고, 이에 따라 사단은 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설정하고,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한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제7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다. 이때 사단은 북한군 제2군단 예하 4개 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강력한 공격에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이병은 신병이었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두에서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1951년 1월 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현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1묘역-6판-63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ㅌ-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