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준(朴三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5911
  • 전몰일자 : 19510221

공훈사항

박삼준 일병은 1932년 1월 1일에 경상북도 달성군 옥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4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5사단으로 배치되었다.
박삼준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30일, 미 제25사단은 전주에 사단지휘소를 설치하고 지리산 일대의 후방지역에 대한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압록강을 향해 북진작전을 실시하던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사단은 11월 2일에 게릴라 소탕작전 임무를 국군 제3군단에 인계하고 북상하였다. 이후 11월 15일에 평안북도 개천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공격준비를 마치고 11월 24일에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에 참가하여 운산에서 온정리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사단 장병들은 평양방어선으로 철수했다. 이마저 위험하여 12월 3일에 평양에서 철수하여 12월 중순에 서울 북방의 임진강 하류 제방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공격 기세를 몰아 서울을 재점령하고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대규모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실시했다. 이에 사단은 임진강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자 했으나 이미 큰 피해를 받은 상황에서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야간에 철수하여 서울을 거쳐 천안 일대에 집결했다. 이후 사단은 1월 25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에 의해 수원-김량장선을 확보했다. 그리고 2월 1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저지한 후에 2월 21일부터 반격작전(일명 ‘Killer작전’)을 실시하여 영등포 부근의 한강 연안으로 진출한 후 한강도하작전을 준비했다. 이날 박삼준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한강선으로 진출하던 중 저항하는 적들을 격멸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ㅊ-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