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주(朴三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5269
  • 전몰일자 : 19511115

공훈사항

박삼주 일병은 1927년 8월 20일에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인 1950년 11월 30일,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박삼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하순에 제2사단은 영주-제천 일대에서 병참선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안동 부근의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그리고 속리산-제천 일대로 작전지역을 확대하여 공비소탕작전을 완수하고,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전방작전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미 제9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격퇴하고 조심스럽게 38도선을 향해 전진했다. 그때 5월 10일을 전후하여 공산군의 활동이 현저히 강화되고 공세징후들이 포착되자 방어로 전환했다. 박삼주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가평 일대에서 방어로 전환했는데, 대규모 중공군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시키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때 제2사단은 5월 24일부터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면서 38도선을 향해 일제히 전진하여 6월 15일경에는 적근산-육단리-원동리 선까지 진출했다. 이즈음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유엔군사령부에서는 휴전협상이 지체되자 7월 말에 이를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10월 13일에 김화-금성진격작전을 개시했다. 박삼주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사단의 예비로 주공인 제17연대를 후속하다가 10월 16일에 초월공격하여 18일까지 최종목표인 522고지를 탈취했다. 이로써 사단은 전초진지를 금성 서남쪽 직목동까지 추진했다. 이후 공산군은 휴전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고,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제2사단 장병들은 전선이 소강상태가 계속되면서 진지보강공사와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정찰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박삼주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11월 15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4면-1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ㄲ-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