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종(朴三鍾)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01

공훈사항

박삼종 경위는 1914년 7월 20일 전남 무안군 무안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6년 6월 7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무안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장흥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위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전남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무안경찰은 무안-함평, 무안-나주, 무안-목포를 잇는 주보급로 경비, 피난민 이동·통제 구호,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3일 북한군이 광주를 점령하고 남으로 진격함에 따라 무안·영암·광산·나주경찰은 지연전을 펼치며 장흥에 집결했다. 장흥에 집결한 경찰부대는 장흥을 중심으로 장흥-강진에 저지진지를 구축하여 목포 쪽으로부터의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보성에도 전초진지를 설치하였다.
7월 31일 적 대대병력이 강진-장흥을 향해 공격을 하자 경찰부대가 적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경찰부대는 8월 1일 완도로 철수했다. 이날 무안경찰은 완도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적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았다. 박 경위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종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경찰 1묘역-503판-70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ㅋ-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