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조(박삼조)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6463
  • 전몰일자 : 19500803

공훈사항

박삼조 상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 활동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50년 초순, 의정부의 제7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박삼조 상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사단의 우측 부대로서 포천 정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제7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 제3,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으로부터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당시 연대는 제2대대가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제1, 제3대대에 금오리 일대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연대는 바로 전투준비태세로 전환하였고, 제1, 제3대대는 신속히 천주산(434고지)-가랑산(350고지) 간의 주방어진지를 점령하도록 했다.
제9연대 장병들은 천주산 방어진지에서 전방부대 경계진지를 무력화하고 통과한 북한군을 포병사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격멸하고자 했다. 이에 북한군 선두 전차 8대는 6월 25일 아침부터 아군의 보병화력이나 105미리 포병사격에도 불구하고 아군 방어진지는 그대로 두고 포천 방향으로 직행하여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다. 뒤이어 오후 4시에 적 보병부대가 포천을 점령했다.
박삼조 상병이 소속된 대대 장병들은 연대와 통신마저 두절한 상황에서 오후 2시경에 경계진지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이후 4시경에 태릉으로 집결하여 육사교장의 지휘로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했으나, 6월 28일 새벽에 한강교가 폭파되고 국군이 서울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철수했다. 그리고 7월 4일까지 안양천 남쪽고지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수원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5일 평택에서 부대 재편성 시에 제9연대는 해체되고, 그는 수도사단 제1연대에 편입되었다.
제1연대는 7월 6일 진천으로 이동하여 진천-청주 축선에서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긴급히 안동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국군 제8사단의 안동 철수를 엄호하고, 8월 1일에 길안(佶安) 방면으로 이동했다. 이후 의성 방면으로 이동했다. 박삼조 상병은 8월 3일에 의성 일대에서 철수하던 중 적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5면-0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ㅊ-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박삼조 상병은 제11사단 직할로 분류되어 있으나 이 시기에 제11사단은 창설되지 않았음. 이에 제9연대로 분류했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