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용(朴三用)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204692
  • 전몰일자 : 19511223

공훈사항

박삼용 하사는 1930년 5월 15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3월 중순, 경기 인천의 제12연대로 입대했다. 제7연대가 동년 5월 6일에 춘천으로 이동할 때, 그는 제7연대로 전속되었다.
박삼용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춘천에 본부를 두고 화천축선을 담당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남침을 했을 때, 제7연대는 춘천에서 3일간 저지하고 철수하여 원주-충주-문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하고, 낙동강 선의 신녕 북방에서 북한군의 8월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압록강 변의 초산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곡 일대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철수하여 이듬해 1월 7일에 장호원 일대로 이동했다. 사단은 중공군 2월 공세를 저지하고 3월 22일부터 춘천 서북방으로 재반격하여 사창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춘계공세(4월, 5월 공세)로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다.
박삼용 하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다시 반격하여 6월 10일에 6월 15일에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자, 유엔사는 군사적 압박을 가하여 휴전협상을 촉진하기로 했다.
이에 제6사단은 유엔군사령부 작전방침에 의거 공세행동으로 전환했다. 먼저 사단은 10월 13일에 21일까지 9일 동안에 걸쳐서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교암산을 탈취하고, 부대정비 후 11월 17일과 18일에 공격하여 949고지를 탈취했다. 이후 공산군이 휴전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군사분계선 위치 설정이 타결되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했다. 그러던 중 박삼용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12월 23일에 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용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4810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3묘역-3판-1455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ㄹ-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