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영(朴三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4354
  • 전몰일자 : 19510205

공훈사항

박삼영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진양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9월 중순에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삼영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기 전, 제17연대는 8월 9일부터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사력을 다해 지키고 있었다. 만약 기계-안강 지역이 돌파당하면 지형상 북한군이 바로 경주-부산으로 진격하여 전쟁이 종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부대에 도착한 후 연대는 다행스럽게도 9월 13일에 경주 북방의 곤계봉을 탈취함으로써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이후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인천상륙작전에 후속부대로 참가했다.
박삼영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정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 후 9월 23일에 신사리에 도착했고, 25일부터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하여 남산을 향해 공격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환했다. 이후 유엔군이 10월 1일부터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제17연대는 11월 7일부로 창설된 제2사단 예하 부대로 편성되어 포천 지역에서 북한군 잔적들을 소탕했다. 그리고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인 12월 중순에 38도선 상의 양문리-탑두울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2사단은 1950년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주저항선이 돌파되어 다음날에 후방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2사단 장병들은 방어지역에서 철수하여 여주로 집결, 다시 제천으로 이동했다가 안동지역으로 이동했다. 왜냐하면 안동 부근의 일월산-보현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0사단이 교란 및 차단 활동을 하고 있어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10사단은 유엔군이 북진할 때 미처 도망가지 못한 패잔병들로서 중공군 공세에 맞추어 태백산맥 일대를 거점으로 후방교란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박삼영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후방지역의 안정을 위해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의 적 패잔병 소탕작전에 집중했다. 그는 중대 장병들과 함께 1951년 2월 5일에 영양 북쪽의 일월산 지역에서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8-ㄷ-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