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성(朴三省)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4327
  • 전몰일자 : 19510320

공훈사항

박삼성 소위는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소위는 예비역이었으나, 1950년 10월경 재소집에 즉각 응하여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소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평양 북방에서 북진 중인 상황이었다. 연대는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11월 하순 묘향산으로 공격을 했으나, 그 남방에서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는 38도선 상에서 물러나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7사단으로 하여금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만경대산, 785고지, 583고지, 계족산을 차례로 점령한 후, 24일 총공격을 가하여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적이 물러남에 따라 1월 25일 사단은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 북방으로 진출했고, 2월 초순까지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강원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가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을 했고, 연대는 3월 6일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박 소위는 이 진격전에서 소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공격을 감행하다 중상을 입고 제2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3월 2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성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5-ㄷ-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