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석(朴三碩)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9

공훈사항

박삼석 순경은 1926년 11월 28일 전남 영광군 군서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영암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부산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영광경찰은 고창-영광, 장성-영광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했고, 영광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하여 곡성-전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사단·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북한군 제13·제15연대는 국군과 경찰의 저항을 뚫고 7월 23일 장성·광주를, 7월 24일 화순·나주·장흥을 점령하고 보성 방면으로 진출했고, 제1연대는 7월 24일 남원을 점령 후 구례-순천으로 남진했다. 이에 전남편성관구사령관은 순천·광산 인근의 경찰과 각지에서 물러난 경찰을 3개 부대로 재편하여 적을 저지하도록 했다.
7월 31일 북한군 대대병력이 강진-장흥을 공격하자 전남 비상경비사령부는 8월 1일 영광·영암·광산·나주·무안·장흥·강진의 경찰병력을 완도로 철수시켜 해상유격전을 펼치도록 했다. 당시 완도에는 완도서장 김두천 경감 이하 200명이 대한청년단원 100명과 함께 치안을 확보하고 있었다. 완도에 상륙한 전남경찰부대는 완도병력 300명과 나주병력 270명, 화순병력 60명으로 본부를 경비하도록 하고 나머지 병력은 청산도에 주둔시켰다. 영광서원 40명과 무안경찰서 선박부대 90명은 부산으로 보내어 후방지원을 하도록 했다. 선박 편으로 부산에 도착한 박 순경은 부산지역 후방 치안 유지 임무에 들어갔다. 8월 19일 박 순경은 부산지역의 오열을 색출하여 추격하던 중 오열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고 안타깝게도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석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ㄲ-02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