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삼덕(박삼덕)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03682
  • 전몰일자 : 19501003

공훈사항

박삼덕 하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이화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9월 2일 제2사단 제3연대에 입대했다. 연대는 1950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연대는 동일 11시부로 제7사단에 배속되어 포천 후방의 송우리 전선에 곧바로 투입되었다. 연대 장병들은 6월 25일 송우리전투와 27일 창동전투에서 분전했으나,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28일 한강교를 건너 과천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29일부터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역삼리, 과천, 군포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킨 후 수원으로 철수했다. 7월 5일 육군본부는 부대를 재편하여 손실이 심한 제5, 제7사단을 해체했고, 이때 제3연대도 해체되어 제18연대에 편입되었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 북방의 미호천-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연대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 투입되어 길안-청송 방어선과 의성 북방의 장림리 전투, 영일군 기계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였고, 18일 마침내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비학산 방향으로 패퇴시켰다. 연대는 기계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8월 24일 북한군 제12사단은 기습적인 야간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전투력의 열세로 27일 결국 기계를 내주고 말았다. 북한군 9월 공세 때 연대는 기계 서측방의 인비동-봉계동의 고지군과 안강 남쪽의 홍계동 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기계-안강-경주 축선의 돌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18일에 안강을, 21일에는 기계를 각각 탈환했다. 국군은 공격한계점에 이른 적이 퇴각하자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23일 적을 추격하여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9월 30일)까지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개시한 연대는 10월 4일 강원도 간성을 점령했다. 이 추격전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진격하다 10월 3일 적 패잔병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삼덕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8판-5면-11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ㄱ-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