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산덕(朴山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54704
  • 전몰일자 : 19510824

공훈사항

박산덕 이등중사는 1926년 10월 15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0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병기단에 배치되었다.
한편, 병기단은 1948년 9월 1일 제1·2병기대대 본부와 제1병기정비중대, 제1병기탄약중대, 병기중정비중대, 병기경정비중대, 병기창고중대 등을 예하부대로 하여 창설되었다. 하지만 병기의 대부분을 미군 군원에 의존하고 있었고, 보급·정비 능력은 극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선 부대에서 가장 긴급하게 요구되었던 것이 병기와 탄약이었다. 병기단은 6월 28일 미군으로부터 105mm 포탄을 비롯하여 119톤의 탄약보급을 시작으로, 7월 3일 M1 소총 590정과 60mm 박격포 등 다수의 장비를 인수하여 이를 야전부대에 보급했다. 특히, 8월부터는 미군으로부터 3.5″ 로켓포를 인수하여 지급하면서 비로소 국군도 대전차공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7월 중순 대구로 이동한 병기단은 낙동강방어선 전투에 소요되는 화기와 탄약을 미군으로부터 인수하여 적시적으로 보급, 정비했다. 그리고 9월 1일에는 제8, 15, 50병기대대를 창설하여 그 능력을 확충했다.
박산덕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반격으로 전환하여 진격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병기단은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전방부대들을 밀접히 지원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되자 병기단은 1951년 4월에 제30병기대대를, 6월에는 제60병기대대를 창설하여 능력을 확장했다.
1951년 7월부터 휴전회담이 추진되고 전선은 안정되어 갔지만 후방교란을 위한 적 게릴라들이 습격, 파괴활동은 더욱 심해졌고, 병기단도 이 게릴라들의 기습을 자주 받았다. 박산덕 이등중사는 전방 부대들에 대한 병기 정비와 보급에 진력함으로써 전투부대들의 전투력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1951년 8월 24일 소대원을 통제하며 전방부대의 병기 정비 지원을 위해 이동하던 중에 적 게릴라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산덕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6-ㅅ-071)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