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사용(朴司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4019
  • 전몰일자 : 19510208

공훈사항

박사용 중위는 1929년 4월 25일에 전라남도 목포시 죽교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경,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고등학교에 설치되어 운용 중인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6주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50년 10월 5일에 육군소위로 임관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전속되었다.
박사용 중위가 부대에 전속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가평지역 상천역 부근으로 이동하여 11월 30일 가평을 공격하여 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공격하여 탈환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가평 북쪽의 지암리와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다. 이에 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전방연대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사단의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하여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위협하자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진출이 곤란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2월 7일 예비인 박사용 중위가 소속된 제35연대를 좌측 전방에 투입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제35연대를 좌측, 제36연대를 중앙, 제27연대를 우측에서 3개 연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재개했다. 박사용 중위는 홍천 포위 재공격 시 소대원을 지휘하면서 적진으로 진격 중 2월 8일 횡성 부근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사용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7판-6면-15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ㅅ-02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