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사용(朴四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305081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박사용 일등상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등상사는 1950년 2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1950년 4월까지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진행하고 강릉에 주둔해 있었다. 1950년 6월 초 북한이 후방에 유격대를 남파하였고 이에 후위의 제21연대는 물론 전방의 제8사단에서도 차출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제8사단의 일부 대대를 차출하여 오대산과 계방산 일대에 투입하게 되었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아군은 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에도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했지만 낙동강 전선까지 지연전을 펼쳤다. 제8사단은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9일 연천 남방에 도달했다.
이후 1950년 10월 24일 서북방의 239고지에 잠복하여 저항을 기도하는 적 약 1개 대대의 병력을 포위하고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했으며, 도주하는 적을 격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반격 준비를 마친 국군은 1950년 9월 국군 총반격작전을 통해 11월 3일 서울에 도달하였다.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아군과 적군은 부대 재정비에 들어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에 아군은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병력과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해 돌진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이내 곧 매복해 있던 적군에 포위당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나 사단의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1951년 2월 12일 적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이 전투에서 박 일등상사는 1951년 2월 12일 적의 총탄에 맞아 횡성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사용 일등상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6999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ㅂ-04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