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사용(朴四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13798
  • 전몰일자 : 19511211

공훈사항

박사용 일병은 1925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출생하였다. 박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1년 6월경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9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9사단은 1951년 6월 24일 새벽 고지 탈환을 위해 3개 방향에서 일제히 포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빼앗긴 고지를 되찾기 위해 6월 26일 새벽을 기하여 기습공격을 가해 왔다. 이에 맹렬한 포 지원으로 교차 사격을 하였으나 8부 능선으로 철수하여 부대를 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제9사단은 1951년 7월 말까지 계웅산을 중심으로 한 김화지구 전투에서 수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격퇴했다. 이후 사단은 1951년 8월 1일 미 제25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창동에서 교육훈련을 진행했다. 아군은 1951년 10월이 되자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아군은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부대 정비를 마친 제9사단은 1951년 10월 5일부로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제9사단은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하다가 1951년 11월 3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된 395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백병전을 전개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고지를 확보하고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전투 중 적탄에 맞아 1951년 12월 1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사용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ㄴ-00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