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사용(朴四用)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20267
  • 전몰일자 : 19510509

공훈사항

박사용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대구시 태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고자 1950년 11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했다. 박 이등중사는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38도선까지 철수를 했고, 사단은 춘천 일대의 38도선 상에 배치되어 방어준비를 하던 상황이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적의 압박 가중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석항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 병력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4일 대야리로 이동하여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6일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평창과 인제 일대에서 공산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중순경에는 인제군 하진부리를 점령하여 경강국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22일 인제군 원통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때 중공군은 제5차 공세(4월 공세)를 시작했고, 제5연대는 4월 23일 제5사단에 배속되어 방어로 전환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제5연대와 제3사단 제22연대의 전투지경선을 집중 공격했다. 연대는 격전을 벌이면서 분전했지만 측방이 노출되면서 전투력의 열세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부평리, 소재 일대까지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사용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2-ㅈ-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