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사업(朴士業)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915

공훈사항

박사업 경사는 1922년 2월 11일 경북 대구시 만촌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9년 7월 15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경북도경 포항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영일 죽장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포항경찰은 오열 색출, 주보급로와 주요 시설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6월 25일 동해안 삼척지구에 해상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766유격부대는 강릉지구의 군경부대가 철수하자 6월 29일 죽변에 상륙했다. 이 중 2개 중대가 6월 30일 울진 전방에 진출하였으며, 7월 5일 영덕, 8월 4일경에는 포항까지 침투했다. 이들은 포항역을 폭파하여 포항을 중심으로 한 보급선을 파괴하려 했다. 적 침투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아군은 8월 11일 오전 5시 포항경찰과 국군 3사단 예하 1개 대대병력을 포항 수도산에 투입하여 2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포항경찰은 이 전투 후 오열 색출, 주보급로와 주요 시설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9월 14일 포항경찰은 영일군 죽장면 일대에 20여 명의 공비가 출현하여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며 아군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포항경찰은 9월 15일 1개 중대병력을 죽장에 투입했다. 이들은 청송 방면에서 넘어 온 북한군 제766유격부대원으로 추정되었다. 포항경찰은 중기리에서 적을 조우하여 오전 11시부터 피·아 간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포항경찰은 적 1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포항경찰대원도 4명이 전사했다. 박 경사는 이 전투에서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사업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경찰2묘역-510판-177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ㅋ-03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