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사범(박사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3257
  • 전몰일자 : 19510918

공훈사항

박사범 일병은 1925년 3월 2일에 경기도 부천시 덕적면 서포에서 출생하였다. 박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일병은 1951년 3월 6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제9사단은 강릉 일대에서 공격작전을 하고 있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의 결과로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와이오밍(Wyo ming)선 (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 격전을 벌여 고대산을 확보했다.
이어 제9사단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에 고지를 확보하였다. 제9사단은 7월 말까지 계웅산을 중심으로 한 김화지구전투에서 수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격퇴하였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진지를 지켜내다 1951년 9월 18일에 안타깝게도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사범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ㅍ-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