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사동(박사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3877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박사동 일병은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매현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마산 지역에 방어지역을 편성하고 있던 미 제25사단으로 배치되었다.
박사동 일병이 전입했던 9월 중순, 미 제25사단은 9월 16일부터 시작된 미 제8군의 총반격작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적들은 마산 일대의 서북산 등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포병과 항공지원 하에 9월 17∼18일 양일간 맹공을 가하였음에도 적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혀 진전이 없었으나, 9월 19일에 적이 진지를 포기하고 신속히 철수했다. 이에 그가 소속된 제35연대 장병들은 사단의 선두에서 적들을 추격하여 9월 25일에 진주를 탈환하고, 함양-남원-이리를 경유 9월 29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이후 후방지역 잔적 소탕작전에 집중했다.
한편 유엔군의 주력은 10월 초에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중순에 평양을 탈취하고, 계속 진격하여 청천강을 건너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공격이 중단되고 청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이에 유엔사에서는 미 제2·제25사단을 전방지역에 투입하기로 했다.
박사동 일병이 소속된 미 제25사단은 11월 2일에 후방지역 임무를 국군 제3군단에 인계하고, 평강 및 장단지역으로 이동하여 11월 15일부터 미 제9군단에 합류하여 차후작전을 위해 청천강 선으로 북상했다. 사단은 11월 24일에 시작된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에 참가하여 온정리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때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우인접의 국군 제2군단이 먼저 붕괴 되었고, 미 제25사단은 후방차단 위협을 느껴 철수를 단행하여 평양방어선을 점령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정면 및 측후방 공격으로 힘겹게 평양방어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12월 1일에 방어선이 일부가 돌파되면서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사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4면-21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ㅌ-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