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부한(朴富漢)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200130
  • 전몰일자 : 19510914

공훈사항

박부한 일등중사는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일등중사는 1948년 5월 1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등중사가 소속된 반격 준비를 마친 제8사단은 1950년 9월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서울, 연천 남방, 철원, 곡산의 잔적을 소탕한 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아군은 계속 북진하여 11월 9일 덕천 탈환 후 구장으로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병력과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해 돌진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이내 곧 매복해 있던 적군에 포위당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제8사단은 1951년 2월 5일 횡성 부근에서 위력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중공군의 2월 공세로 완전히 포위되어 고립된 상태에서 주포리로 흩어지며 철수하였다. 그 후 부대를 재편성하고 1951년 4월 3일 전주로 이동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제8사단은 공비토벌작전을 마치고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하여 1951년 7월 20일 인제군 원통리 북방 노전평지구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박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1951년 7월 말 성공적인 철미동 지구 전투 이후 후방지역 경계 임무를 비롯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수색을 통해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때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제한목표공격계획을 수립하는데, 이 계획의 핵심은 공산군이 점령하고 있는 국군 방어선 남쪽의 해안분지 탈취였다. 이에 주공 사단이었던 제8사단은 1951년 8월 9일부터 8월 24일까지 중동부전선인 서화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 1, 2차 북한군 4개 사단과 고지쟁탈전을 치르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제8사단은 2차 전투 후 965-1031고지 선에 전진 진지를 구축하며 캔자스선 중심으로 확대한 반면, 북한군은 패배한 2개 사단 대신 제15사단을 투입하여 802-85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정찰활동을 강화했다. 제8사단 1951년 9월 10일 사단의 조공으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751고지로부터 무명고지를 향해 진격하여 854고지 북쪽의 무명고지 기슭까지 진출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을 했고, 박 일등중사는 이 과정에서 1951년 9월 14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부한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ㅌ-07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