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부치(朴富治)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19183
  • 전몰일자 : 19521203

공훈사항

박부치 하사는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하사는 1952년 3월경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9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의 입대 당시,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 공세로 인해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되었다.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제9사단은 1952년 6월 21일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9월에 접어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지 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제9사단은 점령하고 있는 백마고지는 철원 평야를 감제함으로써 미 제9군단의 주저항선을 고대산까지 후퇴시킬 수 있는 요충지였다.
중공군은 이 고지를 빼앗기 위해 집요하게 공격을 가해 왔다. 제9사단은 1952년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제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제9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하사는 1952년 12월 3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부치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ㅍ-09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