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부성(박부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5729
  • 전몰일자 : 19510307

공훈사항

박부성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9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이어 제301공병교육대에서 공병 주특기 교육을 받은 후, 육본직할 제1201건설공병단에 배치되어 복무하다 제1103야전공병단으로 전속되었다.
박 일병이 제1103야전공병단에 전속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제1103야전공병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후방지역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1103야전공병단은 북진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11월에 창설되어 제3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3군단은 1950년 10월 16일, 서울에서 신편된 제5사단(1950. 10. 8 재창설, 대구)과 제11사단(1950. 8. 27 창설, 영천)을 배속받아 창설되었다. 창설 후 군단은 서울-춘천-인제-양양 선 이남의 유엔군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12월 10일까지 공비토벌작전을 했다. 이때 야공단은 전투 사단의 작전을 보장하기 위해 교량 및 보급로 보수, 산악지역의 도로개설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때로는 직접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면서 군단의 작전을 지원했다.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면서 제3군단은 12월 중순 양평으로 이동하여 제2·5·8사단을 배속받아 최초로 가평-춘천 정면의 전선에 투입되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3차 공세 때 군단은 영월로 철수했고, 이후 군단은 제3·7·9사단으로 영월전투, 홍천전투, 횡성전투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병단은 전투 병력의 신속한 기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도로와 교량 보수에 주력하면서, 때로는 직접 전투에 투입되어 적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박 일병은 공병대원으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 작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1951년 3월 7일 횡성 일대의 교량 보수 임무를 수행하다 적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부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3면-1727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5-ㄹ-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