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부석(朴富石)

  • 군별 : 해군
  • 계급 : 상사
  • 군번 : 8100887
  • 전몰일자 : 19500716(실제 전투에 투입된 7월 19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

공훈사항

박부석 상사는 경기도 용인군 외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1946년 2월 5일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에 입대했다. 박 상사는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 전신) 신병교육대 제1기로 교육을 받고 조선해안경비대에서 복무하다 1947년 1월 6일 군산기지가 창설되면서 동 기지에 배치되었다.
해군은 1949년 6월 1일 진해특설기지를 진해통제부로 개편하는 한편 각 해군 기지도 해군경비부로 개편했다. 인천, 목포, 묵호 기지가 이날 경비부로 승격되었고, 부산과 포항, 군산 기지는 1950년 4월 15일 경비부로 승격되었다. 각 경비부는 육상과 해상으로 경비 책임구역을 담당했는데, 군산경비부는 육상은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북도의 항만 경비를, 해상은 전라북도, 충청남도의 해상 경비를 맡아 임무를 수행했다.
6·25전쟁 발발 시 해군은 해군본부 예하에 1개 통제부, 6개 경비부 및 4개 정대, 해병대의 편성체제를 유지하면서 해안경비와 해상수호 임무를 수행했다. 해군은 적의 기습상륙에 대비하는 해상·해안 경비 및 해상봉쇄, 병력 및 물자수송 지원을 위한 해상수송 및 상륙작전 지원, 그리고 소해 및 정탐작전에 주력했다. 전쟁발발 초기부터 북한 지상군은 계속 남진하고 있었지만, 한국 해군과 유엔 해군은 6월 29일부터 38도선 이북 해상을 포함하여 한반도 전 해역에 대해 해양통제권을 장악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군산경비부는 즉각 항만 및 해상 경비와 봉쇄작전에 돌입했다. 7월 중순 북한군 제6사단 제13연대가 천안을 경유하여 군산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에 해군은 수송함 안동호를 이용하여 군산항에 비축된 정부미를 부산으로 후송하려 했고, 화물 적재 시 엄호를 위해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 고길훈부대를 군산항으로 파견했다. 고길훈부대는 7월 16일 군산항에 도착했다. 당시 군산항에는 군산경비부 일부 인원과 인천경비부에서 철수한 48명, 옹진반도에서 철수한 제17연대 요원 59명 등이 혼성부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해병 고길훈부대와 이들 혼성부대는 7월 18일 장항에서, 19일 군산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전투력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의 공격에 밀릴 수밖에 없었고, 또 안동호에 정부미 탑재를 이미 완료했기에 19일 오전 11시에 해상으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박 상사는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7월 1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부석 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9판-2면-0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1-ㄱ-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