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부산(朴富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5434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박부산 일병은 1926년 7월 13일에 경기도 인천시(現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8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제5사단 본부중대로 배치되었다.
박부산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는 상황 하에, 북한군 및 중공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방어 편성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사단은 1951년 1월 1일 새벽 중공군의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받고 후방을 차단당하였으며, 1월 2일 밤에는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시단은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침투하자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진출이 곤란하자 사단은 2월 7일 제36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예비인 제35연대를 좌측 전방에 투입함으로써 3개 연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재개했다. 박부산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2월 9일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횡성 일대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를 점령했으며, 이때 적 지휘소를 수색하여 다수의 문서와 탄약 25상자를 노획했다. 그러나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사단은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2월 12일 아침 사단은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하여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했다. 이어서 사단은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영월군 주천리 일대에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박부산 일병은 중공군 2월 공세 시 분대원과 함께 사단 지휘소를 철수 중 2월 12일 적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부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5면-0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ㅂ-03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