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흠(박봉흠)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1436
  • 전몰일자 : 19510425

공훈사항

박봉흠 중위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상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중위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중위는 1950년 7월경에 종합행정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임관하여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제1연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1연대 소속이었던 박 중위는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직할부대로 정리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이 10월 19일에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은 11월 15일에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하였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섬멸하였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며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 공세)에 밀려 D방어선(평택-안성-장호원-원주-삼척을 잇는 선)과 E방어선(일명 황우선, 영월-삼척을 잇는 선)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때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 과정에서 박 중위는 적탄에 맞아 1951년 4월 25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흠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ㄲ-08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