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환(朴鳳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103074
  • 전몰일자 : 19530721

공훈사항

박봉환 이등상사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1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봉환 이등상사는 낙동강 전선에 배치되었다. 박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파죽지세로 나아가 장사동-평해-울진-삼척-강릉(30일)을 탈환하면서, 일일 평균 17.3km의 경이적인 속도로 진격했다. 연대는 1950년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일일 평균 24km의 속도로 북진하여 장전, 통천을 거쳐 10월 10일 격렬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사단은 1952년 9월 28일부터 10월 2일까지 5일간의 중공군 제203사단과 벌인 독수리고지 및 피의고지 쟁탈전에서 많은 전과를 달성하면서 고지를 확보했다. 사단은 이 전투 이후 748고지를 비롯한 사단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보강하면서 방어종심을 보강하였으며, 10월 27일 부대정비를 마친 제18연대에 제22연대 방어진지를 인수하게 하여 同 고지를 계속 확보했다.
사단은 1953년 6월 15일 제2군단에 배속되어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제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 사단은 7월 3일까지 7차에 걸쳐 역습을 감행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으나, 끝내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7월 13일 중공군은 금성 돌출부에 대해 총공세(7·13 공세)를 가했다. 금성천 북방의 여문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중공군 제60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아 흑운토령-주파령-산양리까지 후퇴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진지를 지켜내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환 이등상사는 1953년 7월 21일 양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환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1판-2면-1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9-ㄴ-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6연대로 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동 연대는 전쟁 발발 이전에 해체되어 제22연대로 개칭되었으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제22연대로 조정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