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화(朴奉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3300693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박봉화 일등상사는 경상남도 부산시 남구 수영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8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남침을 했을 때, 제19연대는 원주에서 신속히 춘천의 제7연대와 홍천의 제2연대를 증원하고 6월 30일에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한 달 동안은 원주-충주-문경 축선에서 지연전을 수행하고, 8월 9월에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고,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박봉화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1950년 10월 6일에 춘천 북방에서 38도선을 돌파하였고, 10월 말에는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했다. 이때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중공군의 신정공세, 중공군의 2월 공세, 중공군의 4월 공세 및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4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15일에는 백암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1951년 10월 13일부터 정면의 중공군을 격파하고 10월 21일에는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 교대를 거쳐 1952년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전방 지역으로 이동했다. 당시 제19연대는 사단 예비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에 교암산과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인수했다.
이후 1953년이 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박봉화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5월 17일부터 사단의 우측인 교암산 일대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중공군은 휴전협정 체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금성천 분지를 감제하는 교암산 지역을 탈취하기로 하고, 7월 10일에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일명 금성지구전투가 시작되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계속된 중공군의 공격으로 7월 14일에 교암산에서 적근산-주파령을 잇는 선으로 철수했다. 중공군은 7월 16일까지 적근산-주파령 방어선에 대해 계속 공격했다. 이곳에서 장병들은 강력한 저항으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중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화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면-12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6-ㄲ-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